장산범 - 숲속에서 내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기어오던 ‘흰 털의 무언가’

그날은 아버지랑 장산에 갔다.
등산이라고 해도 거창한 건 아니었다.
주말 아침에 물 하나씩 들고 올라가서, 중간쯤 쉬다가 내려오는 정도였다.
문제는 내려올 때였다.
아버지가 잠깐 길 옆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이 급하다고 했다.
나는 등산로 옆 벤치에 앉아서 기다렸다.
사람들이 계속 지나갔다.
중년 부부, 강아지 데리고 온 아저씨, 운동복 입은 할머니들.
그래서 별로 무섭지 않았다.
근데 어느 순간 사람이 끊겼다.
산길이 조용해졌다.
새소리도 안 났다.
처음엔 그냥 내가 예민해진 줄 알았다.
휴대폰을 보려고 했는데, 신호가 이상하게 약했다.
그때 숲 안쪽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선우야.”
나는 바로 고개를 들었다.
엄마는 그날 집에 있었다.
같이 온 사람은 아버지뿐이었다.
그런데 목소리는 분명 엄마였다.
평소에 나 부를 때처럼, 끝을 살짝 올리는 그 말투까지 똑같았다.
“선우야, 이쪽으로 와.”
나는 대답할 뻔했다.
진짜로.
입이 먼저 열렸다.
근데 바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여기 있을 리가 없는데, 왜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려고 했지?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숲 안쪽에서 다시 목소리가 났다.
“왜 대답 안 해?”
이번엔 엄마 목소리였는데, 조금 이상했다.
너무 비슷해서 이상했다.
사람이 말하는 게 아니라 녹음된 걸 틀어놓은 것처럼, 감정이 한 박자 늦었다.
나는 아버지를 불렀다.
“아빠?”
대답이 없었다.
숲 안쪽에서 이번엔 아버지 목소리가 났다.
“여기야. 빨리 와.”
나는 그 순간 등 뒤가 싸해졌다.
아버지가 숲 안쪽에서 부르는 건 맞을 수도 있었다.
근데 방금 전까지 엄마 목소리가 나던 방향과 똑같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를 이름으로 거의 안 부른다.
보통 “야” 아니면 “가자”라고 한다.
나는 등산로 쪽으로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그때 나무 사이에서 뭔가 하얀 게 움직였다.
처음엔 비닐봉지인 줄 알았다.
바람에 걸린 흰 천 같은 거.
근데 그게 아래로 내려왔다.
사람처럼 걷는 게 아니었다.
몸을 낮게 깔고, 네 발로 기는 것처럼 움직였다.
털이 있었다.
흰 털.
햇빛이 닿지 않는 숲 안쪽이라 정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등 쪽이 길고 희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게 멈췄다.
그리고 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여기야.”
나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내 목소리였다.
내가 조금 전에 아버지를 부른 목소리 그대로였다.
숲 안쪽에서 그 목소리가 한 번 더 났다.
“아빠.”
그리고 조금 뒤, 진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왜?”
아버지가 숲 반대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는 내 쪽을 보지 않고, 하얀 게 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