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멘스쿠나(リョウメンスクナ), 절에서 나온 긴 목조 상자 안의 이름
먼저 짚어둔다.
여기서 다루는 료멘스쿠나는 확인된 사건 기록이 아니다. 일본어로는 「リョウメンスクナ」, 한자로는 「両面宿儺」라고 적는다. 2005년 9월 21일, 일본 익명 게시판 2ch의 유명 괴담 스레드에 올라온 글을 출발점으로 퍼진 인터넷 괴담이다.
2ch에는 한때 “죽을 만큼 농담이 안 되는 무서운 이야기를 모아보자”는 식의 괴담 스레드가 있었다. 일본 인터넷 괴담 가운데 많은 이야기가 그곳을 통해 퍼졌고, 료멘스쿠나도 그 계열에 속한다.
한국에서는 『주술회전』 때문에 “료멘 스쿠나”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 다루는 것은 만화 속 캐릭터가 아니다. 일본 인터넷 괴담에서 오래전부터 회자된, 절 해체 현장에서 발견된 목조 상자 이야기다.
조금 복잡한 점이 있다.
료멘스쿠나라는 이름 자체는 인터넷 괴담에서 새로 만든 말이 아니다. 일본 고대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도 등장하는 오래된 이름이다. 히다, 지금의 일본 기후현 북부 지역에는 지금도 료멘스쿠나를 지역의 수호적 존재나 영웅으로 보는 전승이 남아 있다.
그러니까 이름은 오래됐다.
하지만 2ch 괴담 속 료멘스쿠나는 그 전승을 그대로 설명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낡은 절.
해체 작업.
봉인된 목조 상자.
읽기 어려운 글자.
그리고 안에 들어 있었다는 무언가.
이쪽은 민속 자료라기보다, 인터넷 시대에 만들어진 봉인 괴담에 가깝다. 오래전부터 일부러 막아둔 물건이 있고, 그것을 건드린 뒤 문제가 생기는 이야기다.
처음 이 괴담을 읽었을 때, 나는 조금 신경 쓰였다.
상자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보다, 왜 하필 절의 해체 현장이었는지가 먼저 걸렸다. 오래된 절이나 신사는 괴담에서 자주 나온다. 하지만 “해체”라는 말이 붙으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닫혀 있던 곳을 여는 일.
오래된 벽을 부수는 일.
누군가 일부러 보이지 않게 해둔 것을 밖으로 꺼내는 일.
그건 그냥 배경이 아니라, 이 괴담의 시작점이다.
이야기는 건축 관계 일을 하던 화자의 말로 시작한다.
화자는 어느 오래된 절을 해체하는 작업에 참여한다. 이미 제대로 쓰이지 않는 절이었고, 관리도 거의 되지 않는 곳이었다. 작업 도중 동료가 화자를 부른다. 본당 안쪽, 밀폐된 방 같은 곳에서 검게 변한 긴 목조 상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상자는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길었다고 한다.
오래된 나무는 어둡게 변해 있었고, 겉에는 낡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글자는 거의 지워져 있었지만, 그중 일부만 겨우 읽을 수 있었다.
대정 연간.
어떤 주법.
료멘스쿠나를 봉한다는 내용.
대정 연간은 일본 다이쇼 시대, 그러니까 1912년부터 1926년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 원문 계열에서는 료멘스쿠나가 한자와 가타카나가 섞인 형태로 적혀 있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정확한 문장은 판본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여기서는 원문 문장을 길게 옮기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하나다.
그 상자는 단순히 물건을 넣어둔 상자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누군가 일부러 닫았다.
못을 박았다.
종이를 붙였다.
그리고 열리지 않게 두었다.

나는 이 부분을 확인하고 싶어서, 먼저 히다 쪽 자료를 찾아봤다.
료멘스쿠나 전승이 남아 있는 지역 자료, 관광 안내, 사찰 소개문, 사진 자료를 하나씩 열어봤다. 인터넷 자료만 보면, 이 이름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오래된 기록 속의 이형적 존재. 또 하나는 히다 지역에서 전해지는 지역 영웅이나 신앙의 대상이다.
그런데 2ch 괴담 속 료멘스쿠나는 둘 다 아니다.
거기서는 봉인된 것이다.
이 차이가 묘하게 걸렸다.
같은 이름인데, 한쪽에서는 모셔진다.
한쪽에서는 닫힌 상자 안에 있다.
한쪽에서는 지역을 지킨 존재로 전해지고,
한쪽에서는 열면 안 되는 물건처럼 다뤄진다.
자료만 읽고 끝내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비슷한 분위기를 확인하러 갔다. 괴담 속 절이 어디인지 특정할 수는 없다. 특정할 자료도 없고, 특정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실제 무대라고 주장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오래된 전각과 목조 건물이 남아 있는 공개된 장소들을 몇 군데 골랐다.
히다 쪽까지 갔을 때는 날씨가 흐렸다.
관광객이 지나는 길은 평범했다. 기념품 가게가 있고, 표지판이 있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곳에서는 괴담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밝고, 너무 정돈되어 있다.
그런데 조금 옆으로 빠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오래된 목조 건물 뒤쪽.
사람이 잘 서지 않는 처마 아래.
문이 닫힌 작은 전각.
안쪽이 잘 보이지 않는 창.
그런 곳에 서면, 료멘스쿠나 괴담의 상자가 왜 절 안쪽에서 나와야 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사람이 다니는 앞쪽에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름표가 있고, 안내문이 있고, 사진을 찍어도 되는 곳과 안 되는 곳이 나뉘어 있다. 하지만 뒤쪽은 다르다. 안내문이 없는 문, 오래된 자물쇠, 축축한 나무 냄새, 바닥에 떨어진 잎 같은 것들이 먼저 보인다.
물론 들어가지는 않았다.
나는 끝까지 들어가지 않는다.
다만, 입구까지는 간다.
이 괴담에서 상자는 현장에서 바로 열리지 않는다.
보통 이런 괴담이라면 누군가 장난처럼 열어버릴 것 같지만, 이 이야기는 그 지점에서 한 번 멈춘다. 관리 쪽에 연락하고, 예전 주지에게 확인해보자는 말이 나온다. 주지는 절을 맡아 관리하는 승려를 뜻한다. 그래서 상자는 일단 현장 근처의 임시 건물에 보관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다음 날, 상자가 사라진다.

누가 옮겼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상자를 건드렸던 사람들에게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괴담에서 무서운 부분은 상자 안의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전해 들은 말과 뒤늦은 확인으로 진행된다.
누가 죽었다.
누가 병원에 갔다.
누가 갑자기 이상해졌다.
처음에는 우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우연이라고 넘기기 어려운 말들이 하나씩 나온다.
그리고 이름이 다시 등장한다.
료멘스쿠나.
현장에서 계속 생각난 것도 그 이름이었다.
상자 안의 형상이 아니라, 상자 겉에 적혀 있었다는 이름.
거의 지워진 글자.
읽을 수 있는 부분만 남은 문장.
그중에서도 또렷하게 보였다는 이름.
오래된 물건은 대개 설명이 부족하다. 그래서 더 신경 쓰인다. 무엇에 쓰던 것인지, 누가 만든 것인지, 왜 거기에 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름이 적혀 있으면 조금 다르다.
그 순간부터 물건은 그냥 물건이 아니게 된다.
낡은 상자 하나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 이름을 상자에 붙였다는 사실이 먼저 보인다. 아무 이름이나 적은 것이 아니다. 료멘스쿠나. 오래된 기록과 지역 전승 속에 있던 이름이다.
여기서 괴담은 실제 전승의 료멘스쿠나와 이상하게 엇갈린다.
히다 지역의 료멘스쿠나는 지역에 따라 영웅이나 신앙의 대상으로 전해진다. 일본 고대 기록에서는 중앙 권력에 따르지 않은 이형의 존재처럼 나오지만, 히다 지역에서는 지역을 개척하고 지킨 인물처럼 전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2ch 괴담 속 료멘스쿠나는 그런 지역 영웅의 모습과 다르다.
여기서는 봉인된 것이다.
센코지 쪽 자료도 찾아봤다. 기후현 다카야마시에 있는 절로, 료멘스쿠나와 관련된 전각이 있는 곳이다. 전각은 「스쿠나도」라고 불리고, 그곳에는 료멘스쿠나의 석상이 안치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진으로 보면, 앞과 뒤를 나누어 보는 구조가 인상적이다.
정면의 얼굴.
뒤쪽의 얼굴.
작은 창.
닫힌 문.
밖에서는 전부 볼 수 없고, 정해진 방향에서만 조금 볼 수 있는 구조다.
실제 전각과 2ch 괴담 속 목조 상자는 당연히 다른 것이다. 섞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 장소의 사진을 보고, 또 비슷한 오래된 전각 앞에 서보면, “두 얼굴”이라는 말이 단순한 설정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한쪽 얼굴만 보면 영웅이다.
다른 쪽 얼굴까지 생각하면 이형이다.
기록에서는 역적이고, 지역 전승에서는 수호자다.
인터넷 괴담에서는 봉인된 저주다.
두 얼굴이라는 말이 이렇게 잘 맞는 이름도 많지 않다.
돌아와서 사진을 정리했다.
대부분은 평범했다. 흐린 하늘, 오래된 지붕, 닫힌 문, 처마 밑 어두운 부분. 이상한 것은 찍히지 않았다. 그런 사진은 자료 폴더에 넣었다.
다만 한 장은 보류 폴더로 옮겼다.
전각 뒤쪽을 조금 멀리서 찍은 사진이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나무 기둥, 어두운 문틈, 오래된 안내판의 뒷면. 그런데 확대했을 때 문틈 안쪽에 흰 선 같은 것이 보였다.
종이일 수도 있다.
빛 반사일 수도 있다.
나무가 벗겨진 부분일 수도 있다.
그렇게 보는 편이 맞다.
그래서 증거는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사진은 이상하게 본 자료 폴더에 넣고 싶지 않았다. 지우지도 않았다. 그냥 保留, 보류 폴더로 옮겼다.
료멘스쿠나 괴담을 읽을 때마다, 상자 안보다 상자 바깥을 더 생각한다.
상자를 만든 사람.
못을 박은 사람.
종이를 붙인 사람.
그 상자를 본당 안쪽에 둔 사람.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절을 관리하지 못하게 된 사람.
그 사람들은 괴담 속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흔적은 남아 있다. 상자를 닫은 방식, 글자를 붙인 방식, 열지 말라는 분위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무서운 것은 괴이가 튀어나오는 장면이 아니다.
누군가 오래전에, 너무 진지하게 겁을 먹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 괴담으로서의 료멘스쿠나가 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름은 실제 전승에서 왔다.
장소는 절이다.
물건은 목조 상자다.
문자는 오래되어 잘 읽히지 않는다.
피해는 뒤늦게 이어진다.
전부 익숙한 재료다. 그런데 함께 놓으면 이상하게 설득력이 생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공사하다가 이상한 게 나왔다”는 이야기와, 오래된 이름이 결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괴담은 확인이 어렵다.
어느 절인지 특정되지 않는다.
상자의 실물도 없다.
관련자들의 기록도 없다.
실제 전승의 료멘스쿠나와 2ch 괴담 속 료멘스쿠나가 이어진다는 증거도 없다.
그러니 이것을 민속 자료로 단정하면 안 된다.
그렇게 쓰면 안 된다.
다만 괴담으로는 무척 강하다.
사람은 오래된 이름 앞에서 조심스러워진다. 특히 그 이름이 종교 시설, 봉인, 해체 현장과 함께 나오면 더 그렇다. 정확하지 않아도, 아니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더 불편하다.
알 수 없는 글자.
빠진 날짜.
지워진 문장.
누군가 일부러 닫아둔 상자.
설명이 부족해서 허술한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 빈칸을 직접 채우게 된다.
비슷한 오래된 전각 앞에서 느낀 것도 그것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문은 닫혀 있었다.
사람들은 지나갔다.
안내판에는 평범한 설명만 적혀 있었다.
그런데 문 안쪽을 오래 보고 있으면, 괜히 한 발 물러나게 된다.
안에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다.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다.
료멘스쿠나의 무서움은 상자를 열었느냐, 열지 않았느냐에만 있지 않다.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우리가 그 이름을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신으로 부르는지, 괴물로 부르는지, 옛 인물로 부르는지, 저주로 부르는지. 부르는 사람마다 다르고, 듣는 사람마다 다르다.
오래된 이름은 가끔 그런 식으로 이어진다.
기록에는 한 줄로 적힌다.
지역에는 신앙으로 전해진다.
인터넷에는 괴담으로 퍼진다.
그리고 어느 날, 해체 현장의 먼지 속에서 다시 나온다.
그때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냥 상자가 있다.
못이 박혀 있다.
종이가 붙어 있다.
이름이 적혀 있다.
료멘스쿠나.
그 이름을 읽는 순간, 상자는 더 이상 단순한 나무 상자가 아니게 된다.
돌아오는 길에 사진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보류 폴더에 넣은 그 사진은 다시 열지 않았다. 밤에 그런 사진을 두 번 보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
아마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빛이었을 수도 있고, 종이였을 수도 있고, 카메라가 어두운 부분을 이상하게 처리했을 수도 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래도 그날 숙소에 돌아와 방 안의 문 개수를 먼저 세었다.
※ 이 글은 일본 인터넷 괴담 「료멘스쿠나」와 실제 료멘스쿠나 전승을 함께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2ch 게시글의 세부 전개와 원문 표현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으며, 실제 전승과 인터넷 괴담을 같은 사실로 단정하지 않는다. 히다 지역의 료멘스쿠나 신앙과 센코지 관련 전승은 현지 문화 자료로 다루며, 2ch 괴담 속 봉인 이야기와는 구분한다.